양림역사문화마을 소개
introduction
introduction
뒹굴동굴
양림동에는 총 4개의 방공호가 있다. 일제강점기 시설 일본군 대피시설인 방공호로 쓰였던 동굴이다. 이중 하나는 너무 작아 현재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이고 나머지 세 개는 각각 문화재지킴이센터, 개인주택, 그리고 뒹굴동굴로 이용 중이다. 방공호의 쓰임과 달리 뒹굴동굴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뒹굴거리며 논다는 뜻이다. 2013년 양림동의 문화와 역사,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양파정
1914년 양파 정낙교가 홍수를 다스렸던 석서정을 추억하며 자신의 호를 따 양림산 바위언덕에 지은 팔작골 기와지붕 누정이다. 석서정은 광주천이 자주 범람해 주민들의 근심이 끊이지 않자 지금의 금교 근처에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짓고, 양쪽에 다리를 놓았다고 전해진다. 양파정은 1914년 창건된 이후, 1932년 중건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돼 있다. 정자 주인인 정낙교를 비롯해 당대 명인들의 시문 30점이 현판에 남아있다.
호랑가시나무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정원이었던 양림산 남쪽 기슭에 위치해있다. 수령 410년 되는 노거수이다.
잎가에 다섯 개의 가시모양 톱니가 있어 호랑이의 등을 긁는데 쓸 만하다고 하여 호랑가시나무 혹은 호랑이등긁기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겨울에는 눈 속에서도 열매가 붉은 빛을 띠어 관상수로서 제격이며 성탄트리로 사용되어왔다.
광주정공엄지려 충견상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낸 정엄(鄭淹)의 효행을 기리는 석조로 된 정려이다. 정려각 내에는 비(碑)와 함께 견석상(尤石像)이 있다. 효성이 남달랐던 정엄은 병환 중인 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펴왔고, 모친상을 당하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그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1611년 국가에서 정려(旌閭)를 명하였다. 이 후 1975년에 석조로 재건하였다.
사직공원 전망타워
사직공원 옛 팔각정 자리에 들어선 전망타워이다. 양림동의 야경문화를 이끄는 대표적 공간으로 2014년 11월 완공되어 2015년 3월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 주 출입구인 1층을 시작으로 2층 데크쉼터, 3층 전시실, 4층 전망대가 있다. 전시실에는 북카페를 비롯해 미디어 파사드, 전망 망원경, 태양계 행성을 체험하는 인터렉티브존 등 다양한 체험공간들이 조성돼있다. 탁 트인 전망대에는 무등산의 사계절을 비롯해 광주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밖에도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추가적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전망타워는 오전 9시부터 밤 10까지 개방된다.
충현원
한국전쟁 전후 젖먹이 고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박순이(1921~1995) 선생에 의해 1949년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서 출발했다. 120명 가까이 늘어난 고아들을 위해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장소로 이전했다. 경내에는 한국전쟁 당시 길거리에 버려진 1059명의 고아들을 구출한 군목 러셀 블레이즈델(1910~2007) 대령 동상이 세워졌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고아들을 추모하는 ‘희망의 왕좌’와 해외 입양인을 상징하는 ‘평화의 대사’ 조각상이 있다.
선교기념비
1904년 12월 25일 선교사 배유지 목사를 비롯하여 미국 남장로교 광주선교부가 광주에서 처음 예배를 드린 배유지 선교사 임시 사택 터이다. 시민 40여명이 모여 함께 예배를 했다고 전해진다. 기념비는 1982년 12월 6일 대한예수교 장로회 전남노회가 세운 것으로 자연석 화강암제에 음각으로 되어있으며, 화강기단에 세워져있다. 높이 175cm, 폭 85cm, 두께 50cm이다.
5.18민중항쟁 사적지 표지석
광주기독병원 입구 화단부에 5.18 민중항쟁 사적지 표지석(사적 20호)이 있다. 광주기독병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폭력으로 부상당한 시민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한 곳이다. 부상자들을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동참했으며, 부상자들을 내놓으라는 계엄군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들을 가족처럼 치료하고 돌봄으로서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광주기독병원은 오월길의 첫번째 코스인 오월인권길에 해당한다. 오월길은 5개 테마의 18개 코스로 구성된다. 오월인권길은 5.18민중항쟁의 생생한 역사를 따라 26개의 사적비를 찾아가는 길이며, 이중 민주화의 염원이 숭고한 희생정신과 만나는 희생코스에 광주기독병원이 속해있다.
광주 3.1만세운동 기념비
1919년 3.1만세운동을 선도하였던 수피아여고생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일제의 유혈진압으로 수피아 여학생 윤혈녀의 한쪽 팔이 잘려나갔으나 끝까지 만세를 불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기념비는 3.1운동 때 여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기념비 뒷면에는 옥고를 치른 수피아 여학생 23명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기념비 옆면에는 <역사의 별이 되어>라는 추모시가 적혀있다.
“천추에 이름 석 자 누구나 남기는가, 기미년 3.1 운동 선두에 서서 구국의 일념으로 충성을 맹세하고 태극기 앞에 두고서 독립만세를 외쳤네. 일제의 총칼 앞에 나라가 합병되자 자유 없는 속박에서 사느니보다 사슬을 끊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네. 모진 고문을 당하여도 이겨낸 고결한 애국 얼이 역사의 별이 되어 무궁토록 빛나네.”
선교사 묘역
희생과 나눔, 사랑을 실천하며 한센병과 결핵치유, 빈민구제에 앞장섰던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집단 묘역이다. 광주전남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하고, 개화의 물결과 일제치하에서 구국 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던 44인의 선교사들이 묻혀있다. 1904년 선교사들이 정착했던 양림동 일대는 백여시골로 불린 곳으로 몹쓸 병에 걸린 사람이 죽으면 거적에 싸서 버린 풍장터였다.
선교사들은 5만여평에 집을 짓고 선교활동을 펼쳤다. 선교사 묘역을 오르는 양림산에는 선교사들의 이름을 딴 산책로가 조성돼 있으며, 선교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긴 돌계단이 있다. 인근에는 김현승 등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들을 만날 수 있는 문학소공원도 있다.
다형김현승 시비
호남신학대학교 내에 위치한 다형(茶兄)김현승(金顯承: 1913~1975) 시비이다.
양림동 곳곳에는 김현승 시인의 자취가 남아있다. 양림산에 앉아 무등산을 바라보며 사색하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그가 사랑하던 양림동과 무등산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펜촉 모양의 시비가 있다. 살던 집, 고향 언덕, 다니던 양림교회와 숭일학교 터, 신사참배 반대로 잡혀간 경찰서, 근무하던 조선대학교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시비에는 대표작 <가을의 기도>가 적혀있다. 호남신학대학교에서 바라보는 무등산의 절경은 양림동 8경에 손꼽힌다